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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철길 위에서 — 곡성부터 군산까지, 폐철도 여행의 모든 것

  • 2026.05.26
  • By 콘텐츠팀

 

시간이 멈춘 철길 위에서 — 곡성부터 군산까지, 폐철도 여행의 모든 것


더 이상 기차가 달리지 않는 철길이 있다. 고속철도가 새 노선을 뚫고 복선 전철화 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한때 전국을 이어주던 간이역과 철로들이 하나씩 운행을 멈췄다. 그 위로 풀이 자라고 녹이 슬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오히려 그 녹슨 철길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폐철도 여행은 단순한 복고 취향이 아니다. 빠르고 편리한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느리고 낡고 조금 불편한 것들이 주는 위로가 있다. 기적 소리와 함께 흰 연기를 뿜으며 달리던 기차의 기억, 낡은 역사 플랫폼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오후의 공기 — 철길이 품고 있는 것들은 풍경이 아니라 감각이다. 기차는 떠났지만, 그 감각은 철길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전국 각지의 폐철도가 새로운 여행지로 재탄생하고 있다. 관광열차가 다시 달리고, 레일바이크 페달 소리가 터널을 채우고, 낡은 집들 사이 철길 골목에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돌아왔다. 오래된 철길이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는 현장, 한국의 폐철도 여행지 네 곳을 소개한다.
 

1.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 — 1933년 역사와 섬진강이 만나는 곳
 


(사진 출처=곡성군)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섬진강변에는 1933년 건립된 구 곡성역사(등록문화재 122호)가 그대로 남아 있다. 붉은 벽돌 외관, 플랫폼의 나무 벤치, 철길 위에 가만히 서 있는 기관차의 모습은 과거 철도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전한다.

1999년 전라선 복선화 사업으로 기존 선로가 이설되면서 이 역은 운행을 멈췄지만, 곡성군은 역사와 폐선 구간을 철도 테마파크로 재구성했다. 지금 이곳을 달리는 것은 증기기관차 외형을 재현한 관광열차다.

구 곡성역에서 출발해 가정역까지 약 10km 구간을 섬진강을 따라 천천히 이동한다. 창밖으로 흐르는 강물과 초록 언덕을 바라보고 있으면 속도에 대한 조급함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레일바이크도 함께 운영된다. 직접 페달을 밟아 철길 위를 달리는 방식으로, 걷는 것보다 빠르고 기차보다 느린 속도로 섬진강 풍경을 체험할 수 있다.
 

2. 정선 레일바이크 — 국내 최초 폐철도 관광의 시작
 


(사진 출처=코레일관광개발)

2005년 7월 1일, 강원도 정선에서 국내 최초의 레일바이크가 운행을 시작했다. 과거 여객 운행이 중단된 정선선 구절리역~아우라지역 구간(편도 약 7.2km)을 활용한 것이다. 산과 계곡, 터널이 이어지는 철길을 시속 15~20km 속도로 달리며 약 30~40분 정도면 아우라지역에 도착한다.

전체 구간이 완만한 내리막으로 구성돼 있어 체력 부담이 크지 않다. 아우라지역에서 출발지인 구절리역으로 돌아올 때는 풍경열차를 이용한다. 같은 구간이지만 방향이 바뀌면서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구절리역과 아우라지역에는 테마형 공간도 조성돼 있다.

구절리역의 ‘여치의 꿈 카페’, 아우라지역의 어름치 테마 공간 등은 폐철도 감성을 살린 대표적인 사례다.
 

3.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 — 2008년 멈춘 기차, 1970년대가 남은 공간
 


(사진 출처=한국관광공사)

1944년 일제강점기 시기, 신문용지 원료 수송을 위해 군산역과 공장을 연결하는 철길이 조성됐다. 이후 실향민과 주민들이 철길 주변에 정착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됐다.

2008년 7월, 화물열차 운행이 중단되면서 철길은 사실상 폐선 상태가 됐다. 하지만 마을은 사라지지 않았고, 현재는 관광지로 재탄생했다. 약 400m 구간의 철길을 따라 오래된 주택과 레트로 상점, 체험형 사진관 등이 이어져 있다. 달고나, 뽑기, 교복 체험 등은 과거의 일상을 재현하며 방문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 히로쓰 가옥, 이성당 등 인근 관광지와 함께 방문 코스로 구성하면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여행이 된다.
 

▶ 폐철도가 여행지가 된다는 것의 의미

기차가 사라진 철길에 사람들이 다시 모인다. 그것은 단순한 이색 체험 때문만은 아니다. 속도와 효율 중심으로 재편된 교통 체계가 지워버린 풍경들 — 간이역 플랫폼의 공기, 창밖으로 스치는 들판과 강, 기차를 기다리던 시간 — 이 모든 것이 폐철도 위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곡성의 장미 향기, 정선의 계곡 바람, 동해의 수평선, 군산의 골목 풍경. 폐철도 위에서의 여행은 결국 속도를 줄였을 때만 보이는 세계를 다시 꺼내보는 과정이다. 기차는 멈췄지만, 철길 위의 시간은 여전히 천천히 흐르고 있다.
 

 

이경수 기자

kslee@fairtravel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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