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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사랑기부제 매거진

'고향사랑기부'의 기적...영암군에 소아과 생기고 광주 동구에 발달장애 야구단 부활

  • 2024.09.25
  • By 콘텐츠팀

한국에서 기적 이끈 고두환 대표 분투기...연 10조 모아 지방 살린 日 '고향세'가 모델
이상민 행안부 장관, '정부 독점 플랫폼 민간에 대폭 개방'으로 시즌2 예고
시·군·구 지자체들, 외지인의 제2고향 찾기 기대...지방 소멸과의 싸움에 '숨통' 트일 수도  

 

시행 2년차를 맞은 '고향사랑기부제'가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 정부 통합 플랫폼인 '고향사랑e음'을 통해서만 기부금을 받아왔던 행정안전부(행안부)가 민간 플랫폼에도 대폭 고향사랑 기부를 허용하는 쪽으로 입장을 전격 선회했기 때문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9월 3일 한 언론 기고를 통해 "고향사랑기부제 시즌2의 새 콘텐츠는 고향사랑기부금 모금 활성화를 위한 민간 플랫폼 개방"이라고 선언했다. 이 장관은 "자치단체는 홍보 전문성을 가진 민간과 협업해 기부금 모금을 활성화하고, 답례품 관리나 민원 응대 등 업무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올 연말부터는 국민이 일상 가까이에서 고향사랑기부제를 접할 수 있어 모금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그동안 고향사랑e음을 통한 기부는 기부자가 지역을 선택해 일정 금액을 납입하는 방식이어서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기 힘들었다. 인지도가 낮은 지역은 해당 지역 출신들의 애향심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반면 민간 플랫폼을 통한 개방형 기부는 '지역'이 아닌 '프로젝트'에 기부한다. 예를 들어 '발달장애 청소년 ET야구단에 희망이 되어주세요' '소아과 진료를 볼 수 있게 해주세요' 등 각 지역이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민간이 참여해 달라고 설득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민간 플랫폼 방식으로 기부금을 모금했던 지자체들은 기부자의 참여율과 만족도 측면에서 행안부 방식보다 큰 성과를 내왔다. 일본은 처음부터 민간 플랫폼에 기부금 창구를 개방해 2023년 고향납세로 10조원을 거뒀다. '유기견 보호에 동참해 달라'는 호소에 400억원 가까운 기부금이 모인 기록도 있다.

 


▲  광주광역시 소속'ET(EAST TIGERS)야구단' 학생들의 모습 (ⓒ광주 동구 장애인 복지관)

 

"발달장애 민성이, 요양보호사 일자리 얻어"
: 최근 행안부가 민간에 길을 터준 배경에는 지자체의 분투와 성공 사례가 있었다. 광주광역시 동구청(구청장 임택)은 민간 플랫폼 프로그램인 '위기브(wegive)'를 통해 고향사랑기부금을 모아 해체 위기에 놓인 'ET(EAST TIGERS) 야구단'을 살렸다. ET 야구단은 경중·중증 발달장애인들이 모여 야구 규칙을 배우면서 의사소통, 훈련 등이 이뤄지는 곳이다. 해당 야구단은 한 대기업의 지원으로 명맥을 이어가다 지원이 끊기면서 2023년 말 해체 위기에 놓였다.

야구단을 소생시킨 건 고향사랑기부제였다. 동구청 공무원들은 머리를 맞대 야구단의 지원을 이어갈 방법을 모색하던 중 고향사랑기부제를 생각해 냈다. 그러나 행안부 플랫폼을 통해선 ET 야구단이 어떤 사업을 하는지, 어디에 기부금을 사용할 것인지, 왜 기부금이 필요한지 등을 기부자들에게 알릴 길이 없었다.

 


▲  투명하게 밝힌 기부금 용처 (ⓒ위기브(wegive) 사이트)

 

결국 민간 플랫폼인 위기브에 도움을 요청했다. 발달장애인 야구단이 어떤 단체인지 알리는 것부터 멤버들이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 위기브를 통해 기부자에게 일일이 설명한 것이다. 기부금의 구체적인 용처도 밝혔다. 유니폼, 주말 훈련을 위한 감독비, 야구장 임차료 등에 얼마가 사용될 예정인지 위기브를 통해 투명하게 밝혔다. 그 결과 2100여만원(9월 19일 기준)이 모였다.

야구단 멤버와 부모들은 '다시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소식에 감격했다. 이들에게 야구단은 단순히 운동을 하는 곳이 아니라 일반 사회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야구단 창립 멤버인 김민성씨(26)는 야구로 세상을 배웠다. 김씨는 6세 무렵 발달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홀로 외출하는 것도 어려워했던 그는 야구장을 오가면서 버스 번호를 외우고, 밥을 사먹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됐다. 또래와 어울리기 좋아하는 김씨는 야구를 대화 소재로 꺼내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등 타인과 대화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  복지관에 취업한 ET 야구단 김민성

 

김씨는 야구단을 담당하는 복지관의 제안으로 취업까지 했다. 어머니 양은경씨(49)가 말했다. "민성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복지관 팀장님께 전화가 왔어요. 복지시설에서 요양보호사를 도와주는 일자리가 있는데, 민성이가 한번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거예요. 정말 기뻤어요. 장애 아이를 키우다 보면 졸업 후에 이 아이를 어떻게 사회로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거든요."

이들의 소망은 야구단 멤버들이 성인이 돼서도 마음껏 야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서지원씨(20)의 아버지 서석인씨(59)는 "야구단에 공식적인 연령제한은 없지만 다른 청소년들도 있기 때문에 성인이 되면 야구단에서 활동하기가 미안하다"며 "만 18세 이상이 되면 국가 지원도 대부분 끊기기 때문에 장애 아이들을 도와줄 여건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또 다시 홀로 남겨지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  고두환 공감만세 대표 (ⓒ시사저널 촤준필)

 

고두환 대표 "일본 고향세가 내 목숨 살려"
: 이 과정에서 위기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공감만세'의 고두환 대표(40)는 특별히 주목할 가치가 있는 인물이다. 한때 뇌경색으로 쓰러져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던 고 대표는 일본에서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일본판 고향사랑기부제인 '고향납세'를 알게 됐다. 일본 의료보험에 가입된 외국인으로서 고향세의 결정적인 수혜자였던 것이다. 당시 그가 거주했던 히로시마현 진세키코겐정(神石高原町)에는 병원이 없었다. 고 대표는 지자체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닥터 헬기' 서비스를 이용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는데, 닥터 헬기는 해당 관공서의 예산이 아니라 민간으로부터 모금한 고향납세로 설치·운영되었다.


처음엔 고 대표도 조그마한 마을에 헬기가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읍 수준의 진세키코겐정 인구는 지난해 기준 8100여 명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소멸 위기로 꼽히는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의 주민 수(1만여 명)보다 인구가 적다.

고 대표가 말했다. "인구가 8000명 밖에 안 되니까 여기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건 적자 폭이 클 테고, 앰뷸런스로 이동하면 큰 병원까지 가는 데 2시간씩 걸리니까 더 문제다. 그러면 헬기 한 대를 운용하는 게 훨씬 싸지 않겠느냐. 그런데 세금을 들이자니 효용성의 문제가 있었다. 결국 이러한 문제에 공감하는 외지인 기부자들의 고향세로 헬기 구매가 가능했다."

 


▲ 일본의 닥터 헬기 (ⓒ피스윈즈 재팬)

 

일본에서의 경이로운 체험을 바탕으로 고두환 대표는 한국의 위기브 시스템을 구상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기부자의 알 권리였다고 한다. 고 대표는 "기부자들이 경북 울릉군에 기부해 해당 지역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겠지만,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이 기부금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다. 이 심리를 충족해 줘야 참여의 규모가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한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일찌감치 모금 창구를 민간에 개방한 일본과 달리 한국에선 행정안전부의 입김이 절대적으로 강력했다. 민간 플랫폼을 이용하는 지자체에 제동을 걸기 일쑤였다(2023년 8월 28일자 "[단독] 관치에 뿔난 지자체들, '골리앗' 행안부에 잇달아 반기" 기사 참조). 고 대표는 "우리에게 민간 기부를 의뢰한 시·군·구들이 행안부와 계속 맞서야 하고, 도중에 기부가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문제의식을 가진 시·군·구의 젊고 혁신적인 공무원들이 위기브 프로그램을 믿어줬다. 저변에 해당 지자체 단체장과 의회의 전폭적 신뢰가 있었다"고 했다.

20년 전 없어진 소아과, '고향사랑 소청과'로
: 20여 개 시·군·구를 돌아다니면서 당면한 문제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고 대표는 "지자체마다 상황과 사정이 다르다. 지역적 특성뿐만 아니라 지자체가 안고 있는 고민과 해결책까지 공부하다 보니 지자체 한 곳을 갈 때마다 박사과정을 이수하는 느낌"이라면서 "1년 내내 시·군·구를 돌아다니면서 먹고 자고 사람들과 교감하다 보니 외갓집이 10개 이상 생긴 것 같다. 지자체와 연애하는 기분으로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웃었다.

고 대표의 고향사랑 기부 민간 플랫폼으로 기적이 일어난 또 다른 사례가 전남 영암군이다. 2004년은 영암군에 남아있던 마지막 소아과 의원이 없어진 해다. 급속도로 진행된 인구 소멸로 더 이상 수지를 맞출 수 없었기 때문. 그로부터 20년 후, 이 지역에 특별한 소아과가 생겨났다. '고향사랑 소아청소년과'라는 군 서비스다. 고향사랑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개설 비용과 의료진 인건비를 고향사랑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  고향사랑 소아청소년과

 

영암군은 고향사랑기부금 모집을 위기브에 의뢰했다. 무엇보다 위기브의 '특정 사업 지정' 방식이 기부자의 참여를 높이리라는 판단을 했다. 이는 수치로도 뒷받침된다. 영암군은 '공공산후조리원 의료기 구입, 영암맘 안심 프로젝트' 모금을 진행하면서 작년 12월 한 달 동안 위기브와 고향사랑e음(행안부의 플랫폼) 양쪽을 통해 모금 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 위기브가 3억 7900만원을 기록해 고향사랑e음(3억 2800만원)보다 5000만원 더 큰 성과를 냈다.

우승희 영암군수는 시사저널에 "고향사랑e음은 전국 모든 지자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다소 경직된 운영 방식을 갖고 있지만, 민간 플랫폼은 각 지자체의 특성과 상황에 맞춘 유연하고 창의적인 모금 전략을 펼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우 군수는 "기부자들이 자신이 기부한 금액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기부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고 더 많은 기부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개방은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한다. 행안부가 고향사랑 기부의 온라인 플랫폼 독점을 풀고 민간에게 활짝 개방함으로써 지방 소멸 공포에 떠는 시·군·구들의 숨통이 조금은 트일 것 같다. 광주 동구청과 전남 영암군의 사례가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민간 플랫폼 운동의 창안자인 고두환 대표는 "각 지자체가 더 편리하고 쉬운 플랫폼을 선택해 고향사랑기부제에 참여할 것이다. 전국에 퍼져 있는 민간 기부자들은 자신의 관심과 의지로 제2의 고향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출처: 시사채널
날짜: 2024.09.21

▶기사 전문보기: '고향사랑기부'의 기적...영암군에 소아과 생기고 광주 동구에 발달장애 야구단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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