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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45주년 — 광주의 오월이 멈추지 않는 이유
- 2026.05.18
- By 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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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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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46주년 — 광주의 오월이 멈추지 않는 이유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 5,189명이 피해를 입었다. 46년이 지난 지금, 그 기억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나.

(사진 출처=5·18민주화운동기록관)
▶ 총칼 앞에서 시민들은 밥을 날랐다
1980년 5월 18일, 전남대학교 학생들의 시위로 시작된 저항은 열흘 만에 광주 전역으로 번졌다. 계엄군이 시내를 장악하던 그 열흘 동안, 시민들이 한 일은 저항만이 아니었다.
다친 사람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헌혈 줄을 섰고, 주먹밥을 만들어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건넸다. 경찰이 없는 상황에서도 시민들 스스로 질서를 잡았고, 약탈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광주광역시가 2009년에 집계한 공식 피해 현황에 따르면 사망자 163명, 행방불명자 166명, 부상 후 사망자 101명, 부상자 3,139명, 구속·구금 등 기타 피해자 1,589명으로 총 5,189명이 피해를 입었다.
이후 이 모습들이 '오월 정신'이라는 말로 묶였다. 극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서로를 어떻게 돌봤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고, 5·18이 단순한 사건을 넘어 사회적 상징이 된 배경이기도 하다.
▶ 목격자가 줄어들고 있다
5·18을 직접 겪은 사람들이 고령이 됐다. 당시 스무 살이었던 시민은 이제 예순 중반을 넘겼다.
지금 30~40대는 5·18을 교과서나 다큐멘터리로 배웠다. 몸으로 겪은 기억이 아니라, 배워서 아는 역사다. 시간이 갈수록 이 거리는 더 벌어진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5·18을 다룬 작품으로 다시 주목받은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문학이나 영화 같은 콘텐츠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역사를 전달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고 있다.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금 남기지 않으면, 그 기억은 문서 속 숫자로만 남게 된다.
▶ 광주 시민들에게 5월은 다르다
광주에 사는 사람들에게 5·18은 역사책 속 이야기가 아니다. 동네마다 그날의 흔적이 있고, 가족 중 누군가가 직접 겪은 경우도 많다.
매년 5월이 되면 광주는 추모 행사로 채워진다. 1997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정부 주관 기념식이 매년 열리고 있다. 46년이 지나도 광주에서 5월이 특별한 이유는,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기억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 46년 전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80년 광주 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잘못된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것이었다.
선거도 있고, 언론도 있고, 민주주의 제도가 갖춰진 지금도 그 질문은 유효하다. 권력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시민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는지는 어느 시대든 계속 물어야 할 질문이기 때문이다. 5·18을 기억하는 건 과거를 돌아보는 동시에, 지금 우리 사회를 점검하는 계기가 된다.
▶ 광주의 기억은 이제 세계 기록이다
2011년 5월, 유네스코는 5·18 관련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등재된 기록물의 분량은 문서 4,271권에 85만 8천여 페이지, 필름 2,017컷, 사진 1,733장에 달한다.
유네스코 심사위원회는 "5·18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다른 국가에도 영향을 미쳐 냉전 구조가 종식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원했던 사람들의 보편적인 기록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5·18은 45년 전에 끝난 사건이 아니다. 매년 5월 광주를 다시 이야기하는 건,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현진 기자
tmdgm107@fairtravel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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